
정부나 공공기관이 공식 발표한 ‘급발진 차종 순위’는 없고, 국내 조사에서 급발진이 차량 결함으로 확인된 사례도 아직 없습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신고 통계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감정 결과를 보면 의심 사고의 상당수가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한 경우로 판정됐습니다. 그렇다고 남의 일로 넘길 수는 없으니, 의심 상황에서 몸이 먼저 움직이도록 대처 순서와 증거 남기는 법을 정리해 둡니다.
최종 확인: 2026년 10월 기준
‘급발진 차종 순위’를 그대로 믿기 어려운 이유
인터넷에는 쏘나타, 그랜저처럼 특정 차종이 1·2위로 적힌 순위표가 많이 돌아다닙니다. 이 글에도 예전에는 그런 표가 있었지만, 집계 기간과 출처를 지금 다시 확인할 수 없어 삭제했습니다. 무엇보다 신고 건수는 ‘결함이 많은 차’가 아니라 ‘많이 팔린 차’일수록 커지기 쉽고, 신고는 운전자의 주장일 뿐 결함이 확인된 건수가 아닙니다. 차종을 고를 때 이런 순위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대신 공식 기관이 내놓은 숫자는 있습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윤종군 의원실)에 제출한 자동차리콜센터 급발진 의심 신고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연도 | 급발진 의심 신고 |
|---|---|
| 2017년 | 58건 |
| 2018년 | 39건 |
| 2019년 | 33건 |
| 2020년 | 25건 |
| 2021년 | 39건 |
| 2022년 | 15건 |
| 2023년 | 24건 |
| 2024년(6월까지) | 3건 |
| 합계 | 236건 (결함 인정 0건) |
국과수 쪽 자료도 비슷한 흐름입니다. 2024년 10월 국과수 설명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 6월까지 감정한 급발진 주장 사고 334건 가운데 83%(277건)가 가속 페달 오조작으로 판정됐고, 나머지는 차량 손상이 심하거나 사고기록장치(EDR)가 없어 판단이 어려운 경우였습니다. 오조작 사례의 60.5%는 60대 이상 운전자였습니다. 감정 의뢰 건수는 2020년 45건에서 2023년 105건으로 늘어,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 자체는 줄지 않고 있습니다.
급발진 사례와 법원 판단, 어디까지 인정됐나
형사재판에서 “운전자 과실을 증명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가 나온 사례는 있지만, 이는 차량 결함을 인정한 것과는 다릅니다. 민사소송에서 소비자가 제조사를 상대로 결함을 최종 인정받은 국내 사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많이 알려진 두 사건의 진행 상황은 이렇습니다.
2022년 강릉 티볼리 에어 사고
2022년 12월 강릉에서 할머니가 운전하던 차가 급가속해 함께 탄 12세 손자가 숨진 사고입니다. 유족이 제조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2025년 5월 1심 법원은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EDR에 사고 6.5초 전부터 제동 없이 가속 페달이 100% 밟힌 상태로 기록돼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유족은 항소했고, 2026년 7월 기준 서울고법 춘천재판부에서 국과수 감정의 신뢰성과 전자제어장치 자료 제출 여부를 놓고 심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4년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2024년 7월 1일 시청역 인근에서 차량이 역주행해 인도로 돌진하면서 9명이 숨진 사고입니다.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1·2심 모두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로 잘못 밟은 과실을 사고 원인으로 봤고, 2025년 12월 대법원에서 금고 5년이 확정됐습니다.
해외: 도요타 사례는 ‘급발진 인정’이었을까
자주 인용되는 도요타 사례는 2014년 미국 법무부와 맺은 약 12억 달러 규모의 합의입니다. 다만 이는 바닥 매트 끼임과 가속 페달 고착 문제를 소비자와 당국에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책임에 대한 것으로, 전자장치 오류로 인한 급발진을 인정한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제도는 어디까지 바뀌었나
- EDR 기록 공개: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차 소유자 등이 요청하면 제작사는 EDR 기록을 제공해야 합니다. “제조사가 개인에게는 EDR을 주지 않는다”는 예전 설명은 맞지 않습니다. 국토교통부는 비상자동제동 작동 여부, 제동 압력 등을 포함해 기록 항목을 45개에서 67개로 늘리는 안전기준 개정도 추진했습니다.
-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의무화: 2025년 10월 발표된 규칙 개정안에 따라 승용차는 2029년 1월 1일, 3.5톤 이하 승합·화물·특수차는 2030년 1월 1일부터 제작·수입되는 신차에 의무 장착됩니다. 정지 상태에서 1~1.5m 안에 장애물이 감지되면 가속 페달을 세게 밟아도 출력을 제한하는 방식입니다.
- 페달 블랙박스: 시청역 사고 이후 의무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이 글을 확인한 시점까지 신차 의무 장착 제도로 시행된 것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필요하면 개인이 별도 제품을 다는 방식입니다.
- 입증책임 전환(도현이법): 결함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서 제조사로 옮기는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은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22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되고 있으나, 통과 소식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법안의 쟁점은 도현이법 진행상황과 입증책임 전환 입법례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급발진 의심 시 즉시 할 일 체크리스트
국과수가 공개 시연에서 강조한 원칙은 “제동 장치는 엔진보다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당황하면 오른발이 가속 페달 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으니, 아래 순서를 평소에 소리 내어 한 번씩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차가 멈추지 않을 때 (순서대로)
- 오른발이 어느 페달 위에 있는지 확인하고, 브레이크를 한 번에 끝까지 강하게 밟은 채 유지합니다. 여러 번 나눠 밟으면 제동 보조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 기어를 N(중립)으로 바꿔 엔진 힘이 바퀴로 가지 않게 합니다.
- 전자식 주차브레이크(EPB) 스위치를 계속 당긴 채 유지합니다. 주행 중 당기고 있으면 비상 제동이 작동하는 차가 많습니다. 수동식이라면 레버를 천천히 끝까지 올립니다.
- 비상등과 경적으로 주변 차와 보행자에게 위험을 알립니다.
- 시동 끄기는 최후 수단입니다. 주행 중 시동이 꺼지면 핸들과 브레이크가 무거워질 수 있고, 버튼식은 길게 누르거나 여러 번 눌러야 꺼지는 등 차종마다 방식이 다르니 취급설명서를 미리 확인해 두세요.
- 그래도 속도가 줄지 않으면 사람이 없는 쪽의 가드레일이나 벽에 차 옆면을 비스듬히 대어 마찰로 속도를 줄입니다. 정면충돌은 피하고, 안전벨트는 평소 반드시 매고 있어야 합니다.
차가 멈춘 직후 (증거 지키기)
-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빼서 따로 보관합니다. 그대로 두면 새 영상으로 덮어써질 수 있습니다.
- 주변 상가·도로 CCTV 위치와 목격자 연락처를 확보합니다. CCTV는 보관 기간이 짧은 경우가 많아 빨리 요청할수록 좋습니다.
- 밟고 있던 페달, 계기판 경고등, 엔진 소리 등 기억나는 것을 바로 메모해 둡니다.
- 차를 임의로 수리하거나 폐차하지 말고, 제작사에 EDR 기록을 요청합니다.
-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리콜센터(car.go.kr)에 결함 신고를 접수합니다.
평소에 해 둘 수 있는 대비
먼저 블랙박스 음성 녹음을 켜 두세요. 사고 순간 운전자의 말과 엔진 소리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자료가 됩니다. 페달 블랙박스를 단다면 전방 영상과 페달 영상이 같은 시간으로 함께 기록되는지, 영상에 시각이 제대로 찍히는지 가끔 확인해야 합니다. 시간이 초기화된 영상은 증거로서 힘이 약해집니다.
운전할 때는 밑창이 두껍거나 벗겨지기 쉬운 신발을 피하고, 운전석 바닥 매트가 페달 쪽으로 밀려 있지 않은지 살펴보세요. 차를 바꿀 계획이라면 페달 오조작 방지 기능이 있는 차인지도 확인해 볼 만합니다. 참고로 인터넷에 도는 ‘시동을 두 번 나눠 걸기’ 같은 요령은 효과가 공식적으로 검증된 방법이 아닙니다. 사고 뒤 입증 절차는 급발진 의심사고 증명하는 방법에서 더 자세히 정리해 두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급발진이 잘 일어나는 차종이 따로 있나요?
공식적으로 확인된 차종별 순위는 없습니다. 신고 건수는 판매 대수가 많은 차종일수록 많아지기 쉽고, 지금까지 국내 조사에서 결함으로 인정된 사례가 없어 특정 차종이 더 위험하다고 말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전기차는 급발진에 더 취약한가요?
전기차가 더 취약하다는 공식 통계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전기차는 출발 직후부터 힘이 강하게 나와 페달을 잘못 밟았을 때 순식간에 속도가 붙을 수 있습니다. 대처 순서는 내연기관차와 같아서 브레이크, 중립, 전자식 주차브레이크 순으로 기억하면 됩니다.
급발진 의심 사고가 나면 보험 처리는 어떻게 되나요?
결함 여부와 별개로 피해자 보상은 일반적으로 운전자의 자동차보험으로 먼저 처리됩니다. 이후 결함이 입증되면 제조사의 책임을 따로 다툴 수 있지만, 현행법상 입증 부담이 소비자 쪽에 있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사고 직후의 증거 보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